F&F가 테일러메이드 인수를 둘러싸고 최근 보여준 행보는 단순한 ‘인수 포기’나 ‘전략 후퇴’로 해석하기에는 결이 다르다.
오히려 이번 결정은 F&F가 얼마나 자본 효율성과 기업가치 방어를 중시하는 기업인지를 보여주는 사례에 가깝다는 평가다.
시장에서는 한때 기정사실처럼 여겨졌던 테일러메이드 인수전에서 F&F가 물러선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또 공시 문구의 변화와 자문사 지위 조정, 실사 불참이라는 일련의 선택은 모두 우발적이기보다는 계산된 전략의 결과로 읽힌다.
인수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드러난 F&F의 ‘가격 기준’과 ‘가치 기준’이다.
◆자문사 변경·실사 불참, 인수 늦춘 전략적 판단
20일 컴퍼니가이드에 따르면 F&F는 국내 패션·라이프스타일 업계에서 가장 높은 수익성을 기록해온 기업 중 하나다.
MLB, 디스커버리 등 강력한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기반으로 내수와 중국, 글로벌 시장에서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창출해왔으며, 단순 의류 기업을 넘어 브랜드 IP를 운영·확장하는 기업으로 진화해왔다.
특히 공격적인 차입이나 무리한 외형 확장 없이도 높은 영업이익률과 현금 창출력을 유지해왔다는 점에서, F&F는 국내 소비재 기업 가운데 재무 구조가 가장 탄탄한 기업으로 평가된다.
현재 보유한 순현금만 1조 원 안팎으로 추산되며, 이는 단순한 여유 자금이 아니라 언제든 전략적 선택을 가능케 하는 옵션 가치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추진돼 온 테일러메이드 인수는 F&F의 성장 전략에서 중요한 분기점으로 여겨졌다.
글로벌 골프 브랜드를 확보함으로써 의류·아웃도어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스포츠·레저 전반으로 확장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실제로 인수 논의 초기만 해도 시장에서는 F&F의 테일러메이드 인수를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강했다.
그러나 최근 공시와 관련 보도를 통해 드러난 F&F의 태도는 이러한 기대와는 다소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올드톰 캐피털이 테일러메이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이후에도 F&F는 실사에 참여하지 않았고, 투자확약서 역시 제출하지 않았다.
이는 단순한 소극적 대응이 아니라, 가격 협상 국면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된다.
현재 테일러메이드 매각 환경은 매도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라 보기 어렵다.
고금리 기조와 글로벌 소비 둔화, 스포츠·레저 업종 밸류에이션 조정이 이어지는 가운데, 인수 가격에 대한 하방 압력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실사에 선제적으로 참여할 경우, 시장과 매도자 모두에게 ‘인수 의지가 확고하다’는 신호를 줄 수 있고 이는 곧 가격 협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F&F가 선택한 방식은 시간을 아군으로 만드는 전략이다.
아직 올드톰 캐피털이 공식적인 인수 확약서를 제출하지 않은 상황에서, 굳이 실사에 참여하며 몸값을 높여줄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다.
이는 인수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가격이 합리적인 수준으로 내려올 경우에만 참여하겠다는 메시지에 가깝다.
실제로 시장에서는 F&F가 테일러메이드 인수를 완전히 접었다기보다는, ‘가격을 기준으로 재검토하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이 같은 전략적 태도는 공시 문구 변화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F&F는 골드만삭스의 역할을 기존 ‘주관사’에서 ‘자문사’로 변경했다.
주관사라는 표현은 인수가 사실상 확정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인상을 주는 반면, 자문사는 가능성을 검토하는 수준에 머문다.
이를 통해 F&F는 시장의 과도한 기대를 차단하고, 인수 확정으로 오해될 수 있는 여지를 제거했다. 여기에 ‘주식양도통지 전’이라는 문구를 명확히 삽입함으로써, 상대방의 공식 통지가 있어야만 F&F의 의사결정 프로세스가 개시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재공시 기한을 6개월로 설정한 점 역시 단기 결론보다는 중장기 선택지를 열어둔 전략으로 읽힌다.
◆‘인수 포기’가 아닌 ‘가치 보존’ F&F의 선택이 주목받는 이유
인수를 두고 시장 반응은 엇갈렸다. 지난해 12월 중후반부터 보험사를 중심으로 기관 매물이 출회되며 주가가 조정을 받았고, 이는 정보 접근성이 높은 투자자들이 ‘테일러메이드 이후 성장 스토리 공백’을 선제적으로 반영한 결과로 해석된다.
그러나 공시 이후 수급이 순매수로 전환된 점은 주목할 만하다.
무리한 인수를 피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F&F가 보유한 1조 원 현금의 가치가 다시 평가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현재 F&F의 기업가치는 이러한 자산 가치와 현금 창출력 대비 과도하게 할인돼 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F&F는 이미 검증된 브랜드 경쟁력과 높은 이익률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는 ‘다음 M&A가 없으면 성장하지 못하는 기업’이라는 프레임에 갇혀왔다.
이는 기업의 본질적 경쟁력보다 이벤트 중심으로 주가를 해석해온 결과다. 그러나 인수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기업가치가 할인받아야 할 근거는 약하다.
F&F는 테일러메이드 외에도 다양한 선택지를 동시에 검토하고 있다.
구 사옥 매각을 통한 자금 확보는 재무 구조를 더 가볍게 만들고, 향후 인수나 투자에 대한 기동성을 높이는 전략이다.
장기 임차인이 확보된 자산이라는 점에서 매각 리스크도 제한적이다.
또한 자회사 에프앤코를 중심으로 한 뷰티 사업 확장 가능성도 여전히 유효하다.
글로벌 K-뷰티 시장의 구조적 성장과 F&F의 브랜드 기획·마케팅 역량을 감안하면, 알짜 뷰티 브랜드 인수는 중장기 성장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시장 일각에서 거론되는 캐나다 구스 인수 가능성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
다만 이 경우 관건은 가격과 체급이다. 브랜드 가치가 높은 만큼 인수 가격 부담도 크고, 경쟁 역시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F&F의 기준은 명확하다. ‘성장을 위한 인수’가 아니라 ‘가치 훼손 없는 인수’다.
물론 리스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테일러메이드 인수가 장기화되거나 무산될 경우, 단기적으로 성장 모멘텀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은 지속될 수 있다.
그러나 과도한 차입이나 무리한 가격으로 인수를 강행하는 것보다, 선택권을 유지하며 기다리는 전략이 장기적으로 기업가치를 지키는 길이라는 점에서 F&F의 판단은 합리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F&F는 지금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단기 이벤트로 주가를 끌어올릴 것인지, 아니면 자본 효율과 기업가치를 지키며 더 나은 기회를 기다릴 것인지의 선택이다.
최근의 행보는 분명 후자에 가깝다. 테일러메이드 인수전에서 한발 물러선 F&F는 시장에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다.
가격이 맞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겠다는 원칙이다. 이 원칙이 시간이 지나 F&F의 저평가된 기업가치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지, 시장의 시선이 다시 모이고 있다.
이현종 더인베스트 기자 shlee4308@theinvest.co.kr